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된 경산자인단오제 그 내용은

첫째, 한장군님 위패를 모신사당 진충묘에서 올리는 제사
둘째, 단오 명절날을 택하여 거사를 계획 왜구를 유인 섬멸 참수시키는데 무녀를 동원하여 추는 춤이 여원무
셋째, 배우 잡희춤도 함께 추게한 춤이 오늘에 있어 보니 배우잡희는 광대 팔광대 탈춤이다.
넷째, 옛날 그 시대에도 한장군님의 호국충절정신을 받들어 숭공하는 마음과 주인 없는 혼령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무속큰굿이다.
다섯째, 한장군님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진충묘로 가기위해 호장과 장군남매와 제관들이 나아가는 장군행렬

경산자인단오제는 다섯과정으로 구성되어있다.


여원무는 왜구가 도천산에 은거하면서 주민을 괴롭히자 한장군은 누이와 함께 이를 섬멸할 계교를 내고 거짓으로 놀이판을 벌이고 왜구를 유혹하였다.
한장군의 뜻대로 구경꾼 중에는 도천산에서 내려온 왜구의 무리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경계하는 눈치였으나 여원무의 신기함에 눈이 팔리고 풍악의 흥겨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가운데서 춤을 추던 한장군이 큰소리로 무어라 외쳤다.
함성이 일어남과 함께 왜구의 무리들은 칡으로 만든 그물에 휘말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모조리 죽여 저 연못에 던져라."

아름다운 꽃춤의 주인공은 무서운 장군으로 바뀌어 외쳤다. 무당과 구경꾼들의 손에는 모두 비수가 번쩍였다.
그물에 휘말린 왜구들의 무리들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차례로 쓰러져 갔다.
춤추던 이도 구경꾼도 모두 한장군이 미리 배치해 두었던 무사요. 칡으로 만든 그물도 미리 깔아 두었던 것이다.
왜구의 무리들은 떼죽음을 당했고 못물은 핏빛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못둑에는 왜구의 무리를 벨 때의 칼자국이 남은 바윗돌이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참왜석 혹은 검흔석이라고 부른다. 그 후 이 고장에는 한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생겼고, 해마다 단오절에 제사를 모시어 성대한 놀이가 벌어졌으니, 이것이 곧 '한장군놀이 여원무'이며 경산자인단오제의 유래이다


자인팔광대
신라 시대부터 전승되어 온 자인 단오제는 유교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행하여져 왔으므로 제례의 축문이나 영신사, 홀기(笏記) 등은 자세히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잡다한 행사들은 시민들이 주도한 민속으로 구전에 의한 전승에 의존해 왔다. 자인읍지(慈仁邑誌)에 ‘한장군이 여원무를 추게하고 배우잡희를 벌였다. 왜구들이 산에서 내려와 구경하고 있을 때 한장군은 칼을 휘둘러 왜구들을 죽였다. 고을 사람들이 그 뜻을 추모하여 도천산 서편 기슭에 사당을 건립하고, 단오날에 동남 2명을 여장시켜 여원무를 추케 했고 배우잡희도 열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한장군이 창작해 낸 여원무는 무애무를 본딴 것이다.
한편에서는 무애무의 변형인 여원무를 추고 한편에서는 배우 잡희(춤과 음악이 가미된 일종의 가면극)가 어우러져 단순히 여원무의 들러리를 위한 무희가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배우잡희는 기록이 없어 변천과정을 정확히 고증 할수 없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내용의 변화를 일으켜가며 주민속에 뿌리를 내리고 민중의 연극이자 새로운 형태의 가면극인 자인팔광대에 영향을 이어왔다.

오늘 공연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 여원무는 우리 지역에 왜구가 도천산에 은거하면서 주민을 괴롭히자 한장군은 누이와 함께 이를 섬멸할 계교를 내고 거짓으로 놀이판을 벌이고 왜구를 유혹하였다. 한장군의 뜻대로 구경꾼 중에는 도천산에서 내려온 왜구의 무리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경계하는 눈치였으나 여원무의 신기함에 눈이 팔리고 풍악의 흥겨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가운데서 춤을 추던 한장군이 큰소리로 무어라 외쳤다. 함성이 일어남과 함께 왜구의 무리들은 칡으로 만든 그물에 휘말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모조리 죽여 저 연못에 던져라." 아름다운 꽃춤의 주인공은 무서운 장군으로 바뀌어 외쳤고 무당과 구경꾼들의 손에는 모두 비수가 번쩍였다. 그물에 휘말린 왜구들의 무리들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차례로 쓰러져 갔다. 춤추던 이도 구경꾼도 모두 한장군이 미리 배치해 두었던 무사요. 칡으로 만든 그물도 미리 깔아 두었던 것이다. 왜구의 무리들은 떼죽음을 당했고 못물은 핏빛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못둑에는 왜구의 무리를 벨 때의 칼자국이 남은 바윗돌이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참왜석 혹은 검흔석이라고 부른다. 그 후 이 고장에는 한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생겼고, 해마다 단오절에 제사를 모시어 성대한 놀이가 벌어졌으니, 이것이 곧 '한장군놀이 여원무'이며 경산자인단오제의 유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