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인현이 주관하여 건립된 한장군의 사당은 자인 서부리 계정숲 내의 진충묘, 자인 북사리 한당, 자인 원당리 한당, 진량 마곡리 한묘가 있다.

그 중 제일 오래된 것이 진충묘이며, 여러 사당 중 진충묘만 한장군 신위를 모시고 나머지는 한장군 누이를 모신 것이 특이하다. 부락 단위로 세워진 용성 송림리 한당과 부일리 한당은 소실되고 지금은 그 터만이 남아 있으며, 북사리 한당은 현재 면사무소 청사로서 계정숲 내 옛 진충묘가 복원되면 기존 한장군누이 신당을 제자리에 이건 하여야 할 것이다.


① 자인면 서부리 계정숲 진충묘
계정숲 내에 있는 한묘(韓廟)이다. 한장군이 죽은 후에 주민들이 도천산의 서쪽 기슭에 세웠다고 전하는 신당자리이며, 정충언 현감이 중수하였다. 한장군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일제 때 일본인들이 이를 철거하고 자기들의 신사를 세웠는데, 해방 후 북사리에 있던 한당을 이건하여 현재의 진충묘(盡忠廟)가 되었다.
위패는 ‘증판서한장군신위(贈判書韓將軍神位)’ 이고, 매년 단오날 여기서 제사를 모신다.


② 자인면 북사리 한당
북사1리 자인면사무소 뒤에 있었고, 한장군 누이를 모셨으나 해방 후 진충 묘가 일제 때 철거된 것을 아쉽게 여겨 이 곳 사당을 계정숲으로 이건하였다.


③ 자인면 원당리 한당
자인면 원당리에 현존하고 있다.
1663년 자인 현청이 신관리에서 원당리로 옮겨지고 나서 자인 단오제 때 한장군 신위를 모시기 위해 한당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청이 1700년 원당리에서 북사리로 이건되고부터 한장군 누이 사당으로 전락한 것 같다. 원당리 한당 개축전 상량에 < 同治 九年 庚午 四月 二十七日 堅柱 >로 기록된 것을 1996년 10월 개축할 때 알게 되었는데 同治 九年은 청나라 목종(穆宗) 9년, 서기 1870년 근세조선 26대 고종 7년을 말한다.


※연대자료 : 국사대사전, 국어대사전


④ 진량읍 마곡리 한묘
진량읍 마곡리에 현재하며, 한장군누이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원래 이곳은 구사현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 효종때 자인현에 합해졌다. 현이 폐지되기 전에는 단오절 자시에 이 사당에서 한장군누이를 제향한 후, 자인단오제에 참가했다고 한다. 근래에는 진량면 마곡리 등 몇 개 마을이 주관하여 자인 단오제와는 별도의 제례를 치르고 있다.


⑤ 용성면 육동 대종리 한당
용성면 대종리에 있는 한장군누이를 모시는 사당이다. 용성면 일대는 해발 600m가 넘는 곳이다. "진충묘"라고 한지에 써서 액자 대신 붙여둔 한당(韓堂)은 대종리에서 약 300m 떨어진 들 가운데 서 있다.


⑥ 용성면 육동 가척리 한당과 장군덤
용성면 가척리 버드나무 숲에 한장군 누이를 모신 사당이 있어서 단오 전날 동제를 지내 왔는데, 일제 때 철거해 버려 지금은 흔적도 없다. 현재는 정월 15일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며 ‘동제’라고 부른다. 깨끗한 사람을 가려 제관을 시키며, 비용은 동민이 분담한다.

3년마다 한번씩 무당을 불러 큰굿을 했는데 1920년부터 그마저 끊어졌다. 그때는 먼저 ‘장군덤’ (아이들은 ‘따깽이=뚜껑’이라고 하고 있으며 개울가의 절벽 위에 흡사 뚜껑 모양으로 된 거암이 놓여 있고, 이것은 한장군이 가져다 덮었다고 믿고 있다) 옆에 있는 한장군 누님이 계시는 곳(아무것도 없으며 잡목이 우거진 암석)에 가서 인사드리고 쇠치고 난 다음 버드나무 숲의 한장군 사당으로 와서 단오굿을 했다. (용성 송림리 880-0번지 37평)


⑦ 용성면 육동 가척리 한당